김학철 문학 전집 5

항일 빨치산 문학의 시작, 디아스포라 김학철의 초기 소설과 산문

태항산록

무선 | 152×225 mm | 476 쪽 | ISBN 9791163143161

<김학철 문학 전집> 다섯 번째 권은 《태항산록》으로, 단편소설 14편과 산문 30편을 실었다. 1946년 해방 공간의 문단에 조선의용군의 일상생활을 소설로 기록해 발표한 〈균열〉과 〈담뱃국〉을 비롯해, ‘우파분자’로 숙청당하는 빌미가 된〈괴상한 휴가〉(1955년), 1980년 12월 복권되어 다시 창작활동을 시작하면서 쓴 단편소설들과 산문들을 실었다. 
남과 북, 어디에서도 머물 수 없었던 김학철의 비판정신과 해학, 아울러 김학철의 세계관과 문학관을 살필 수 있다.

어른

펴낸날 2023-07-17 | | 글 김학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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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아스포라 김학철의 초기 소설과 산문을 만나다

〈김학철 문학 전집〉 다섯 번째 권 《태항산록》에는, 김학철이 해방 공간 문단에 발표한 단편소설 〈균열〉과 〈담뱃국〉, 1955년 중국 연변에서 발표한 〈괴상한 휴가〉와 〈구두의 역사〉, 1980년 12월 복권되고 나서 24년 만에 발표한 소설 〈우정〉, 1989년에 발표한 〈태항산록〉을 비롯해 단편소설 14편과, 복권된 뒤 다시 창작활동을 하면서 쓴 산문 30편을 실었다. 

김학철은 1941년 태항산 호가장 전투에서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일본에 압송된다. 1942년 5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0년 징역형을 받고 나가사키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5년 10월 석방되어 남한으로 와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미군정의 좌익 탄압으로 1946년 11월에 북한으로 갔다. 김일성에 환멸을 느껴 북한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1950년 10월 중국으로 간다. 1951년 1월부터 1952년 10월 연변에 정착하기까지 김학철은 북경 중앙문학연구소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정령(딩링)을 만나 문학 수업을 받았다. 이후 1957년 ‘우파분자’로 숙청당하고 다시 1967년 《20세기 신화》를 쓴 죄로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 1980년까지 작품활동을 할 수 없었다. 김학철은 복권되자 64세의 나이로 활발하게 글을 써서 발표했다. 

복권되고 24년 만에 창작활동을 시작하면서 쓴 소설과 산문들은 반봉건, 민주주의를 지향했다. 〈우정〉〈열병〉같은 작품에서는 개혁 개방 이후 사회주의 사회에서 마주치는 부조리한 인간상을 날카로우면서도 익살스러운 필치로 그려냈다. 

부록에 김학철 연보와 함께 김학철의 소설과 산문들을 발표 시기 순서로 발표지면을 밝혀, 김학철 문학의 전모를 살필 수 있다. 

 

 

❚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최초로 조선의용군의 일상생활을 소설로 기록하다

김학철은 네 번째 단편소설 〈균열〉을 1946년〈신문학〉창간호에 발표하면서 해방 공간 문단에 등장한다. 같은 해 7월 〈담뱃국〉이 〈문학〉창간호에 이태준의〈해방 전후〉, 안회남의〈불〉과 함께 실렸다. 이로써 해방 공간 문단에서 조선의용군 출신 작가 김학철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신문학〉과 〈문학〉은, 홍명희를 비롯해 이병기, 이태준, 김남천 등이 참여해 1946년에 발족한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였다.)

〈균열〉과 〈담뱃국〉은 역사에서 사라질 뻔한 조선의용군의 존재를 형상화하여 우리 문단에 처음 알린 작품이다. 조선의용군의 일상생활을 생생하고 진솔하게 소설로 기록함으로써 역사 기록에서 볼 수 없는 조선의용군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려냈다. 1989년에 발표한 〈태항산록〉은 조선의용군이 태항산 근거지에서 활동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1955년에 발표한 〈괴상한 휴가〉는 중국에서 ‘반우파 투쟁’이 시작되면서 ‘우파분자’로 숙청당하는 빌미가 된 소설이다. 남과 북, 어디에서도 머물 수 없었던 김학철이 1950년대 중반 이후 중국 사회주의 현실을 비판하는 단초를 볼 수 있다. 

 

 

❚ 개혁개방 이후 산문을 통해 김학철의 문학관을 엿보다

이 책에 실은 산문 30편은 모두 1980년 12월 복권된 뒤에 발표한 글들이다. 김학철의 글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고사와 성구를 적절히 활용하여 익살스러우면서도 에둘러 표현하여 읽는 재미를 더했다.

이 책에 실은 산문들은 김학철이 루쉰의 비판 정신과, 《임꺽정》의 인물 묘사와 우리말 구사를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보여 준다. 김학철은 1952년부터 1955년까지 루쉰의 중단편 소설 18편을 번역했다. 《임꺽정》은 외우다시피 할 정도로 여러 번 읽었다. 산문〈형상성과 유머〉〈작가 수업〉〈맛이 문제〉〈아름다운 우리말〉 등을 통해 ‘유머’와 ‘인물의 형상화’, ‘우리말 표현’을 중요시한 김학철의 문학관을 엿볼 수 있다. 

산문 중에서 〈전적지에 얽힌 사연〉은 태항산 ‘호가장 전투’에 관해 쓴 유일한 기록이다. 이 전투는 조선의용군 29명이 중국 팔로군의 지원 없이 일본군 300여 명에 맞서 싸운 전투였다. 이 글에 김학철은 당시 전투 상황을 직접 지도에 표시해 놓았다.

 

▮ 저자 소개

김학철(金學鐵) | 글

본명은 홍성걸(洪性杰). 1916년 조선 원산에서 태어나 서울 보성고보 재학 중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중국 상해로 탈출, 김원봉 휘하 의열단 반일 테러 활동에 가담,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 조선의용대 창립 대원으로 항일 투쟁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1940년 중국공산당에 가입, 1941년 태항산 호가장 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다리에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 나가사키형무소에서 4년 동안 복역했다.

옥중에서 부상당한 다리를 절단하고 1945년 일본이 투항하여 출옥했다. 서울에서 조선독립동맹에 참여, 단편 〈지네〉(1945년)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하고, 그 뒤 평양에서 〈로동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1950년부터 중국 북경 중앙문학연구소(소장 정령)에서 창작활동을 계속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20세기의 신화》 필화사건으로 10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80년 복권되어 창작활동을 재개하고 2001년 9월 25일 연길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편소설 《해란강아 말하라》(1954년), 《격정시대》(1986년), 《20세기의 신화》(1996년), 소설집 《무명소졸》(1989년), 《태항산록》(1989년), 산문집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1994년), 《나의 길》(1996년), 《우렁이 속 같은 세상》(2001년),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2002년), 전기문학 《항전별곡》(1983년),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1995년) 등 이 밖에도 많은 저서를 남겼다.

 

▮ ‘추천하는 말’

김학철 선생은 정통 사회주의자이고 인류가 가야 할 길은 사회주의라는 생각을 한 번도 버린 적 없다. 끝내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간 사람이다.

내가 이런 김학철 선생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1948년 <담뱃국>이라는 소설이었다. 김학철 선생은 사회주의자이지만 그가 쓴 소설에서는 인간의 여러 가지 모습, 사람 사는 기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뒤 그 작품에 대해 서평을 쓴 인연으로 연변에서 김학철 선생을 여러 차례 만나게 되었다. 내가 본 김학철은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또 소설 쓰는 것을 매우 즐겨했다. 

김학철 선생의 글은 한국 문학을 매우 풍부하게 만드는 중요한 한국 문학의 한 갈래라고 본다. 그가 쓴 글들이 <김학철 문학 전집>으로 나온다니 참으로 기쁘다. 혁명적 낙관주의자 김학철 선생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_신경림 시인

 

한국의 보리출판사에서 <김학철 문학 전집> 전 12권이 출판된다고 합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김학철은 불요불굴의 사회주의자였습니다. 그가 평생 지향한 것은, 그의 말을 빌리면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였습니다. 그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은 넉넉했던 팔로군 생활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에게는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은 사회주의는 있을 수 없고, 사회주의가 되려면 인간적이어야만 하는 것이었지요.

2001년, 김학철의 유해는 태어난 고향인 원산에 닿도록 두만강에 띄워 보내졌습니다. 원산에 닿은 유해는 한국에 와서 <김학철 문학 전집>으로 태어났고, 동해를 건너 일본으로 가서 <김학철 선집>이 되었습니다. 이제 더 나아가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건너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_오무라 마스오 와세다 대학 명예교수

 

김학철 선생이란 어른의 성함을 처음 들은 것은 1980년대이다. 내가 국회에서 선배로 모신 송지영 선생이 “김학철이란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스트이고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공산주의자이시지. 그분은 한 번도 지조를 꺾지 않으셨고 올곧은 그대로 삶을 사셨다.”고 소개했다.

최후의 독립군 분대장 김학철 선생은 일찍부터 독립운동에 가담해 태항산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총격을 당해 다리를 다치고 일본군에 붙잡혔다. 일본에 협조했다면 치료라도 제대로 받았을 테지만, 그것도 거부하여 평생 다리 하나가 없는 불구가 된 채 일본 감옥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김학철 선생은 전 생애를 레지스탕스로 일관하셨다. 그분이 누리고 바라는 삶은 간단하다. 필수품으로 원고지와 펜, 그리고 간단한 옷가지, 누울 자리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을 것이다. 왜 우리는 마하트마 간디를 찾아야 하나? 우리의 스승은 바로 김학철 선생인데!

이제라도 김학철 선생의 작품을 모아 전집을 낸다고 하니 매우 반갑다. 김학철 선생의 해학과 유머가 있는 여유로운 필체를 독자들도 함께 느끼길 바란다.

_이종찬 우당교육문화재단 이사장

 

김학철이 없었다면 우리의 굴욕적인 식민지사의 한 부분은 어찌 되었을까. 그 굴욕이 한결 비참하고 수치스럽지 않았을까. 우리의 독립투쟁사 말기에 ‘조선의용대(군)’라는 다섯 글자가 박혀 있다. 그런데 그 독립군이 어떻게 결성되고, 어디서, 어떻게 싸웠는지 실체적인 명확한 기록이 없었다. 그 역사 망실의 위기를 막아낸 사람이 바로 김학철이다. 

김학철은 바로 조선의용군의 ‘최후의 분대장’으로 싸우다가 왼쪽다리에 총상을 입었고, 치료를 받지 못해 상처가 썩어 들어가다가, 일본의 나가사키형무소까지 끌려가 결국 절단당하고 말았다. 

그 후 그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외다리 인생’을 살아 내면서 총 대신 펜을 들고 문인의 삶을 개척했다. 그리고 소설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그의 고결한 영혼 속에서 탄생한 진솔한 작품이 바로 《격정시대》이다. 그는 그 소설을 통해 작가의 진정한 소임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작가는 민족사에 기여하고, 인류사를 보존해 가는 존재다.

이제 그분의 모든 작품들이 전집으로 묶여 우리 문학사에 크게 자리 잡으며 많은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기쁘고 보람스러운 일이다. 선생께서도 특유의 잔잔한 미소를 지으실 것이다

_조정래 소설가


▮ 본문 중에서

첫 문장

누런 털이 보수수 난 송아지가 왼몸에 하나 가득 따스한 햇빛을 받고 누워 가지고 등어리에서 아지랑이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도 모르고 까무락까무락 졸고 있다. 

 

1941년 12월 11일, 적군은 선옹채로 쳐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즉시 팔로군의 한 개 대대와 함께 치열한 방어전을 벌임으로써 적군을 격퇴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호가장에 옮기어 숙영하였습니다. 이튿날 즉 12월 12일 새벽, 적군의 대병력이 우리를 포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불가피적으로 일장의 혈전이 벌어졌습니다. 그 전투에서 네 명의 조선의용군 용사가 젊은 목숨을 바쳤습니다.

손일봉(孫一峰) 28세

박철동(朴喆東) 26세

한청도(韓清道) 27세

왕현순(王現淳) 24세

이 밖에 중상자 둘, 경상자 둘이 났는데 저도 그중의 한 사람입니다.

_본문 287쪽

 

  우스개, 즉 유머가 부족하거나 아주 없는 작품은 읽기가 따분하다. 예를 들어서 《홍루몽》, 《유림외사》, 《고요한 돈》, 《림꺽정》 및 로신의 작품들에는 다 그 갈피갈피에 우스개가 끼어 있다. 영국 작가 디킨즈나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작품들에도 다 그 갈피갈피에 우스개가 끼어 있다. 그래서 그런 작품들은 암만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사람이란 계속 엄숙하거나 계속 긴장하면 피로를 느끼고 권태감을 느끼는 법이다. 청중이 모두 듣기 싫어서 진력이 났는데도 계속 장광설을 늘어놓는 연사는 멍텅구리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_본문 321쪽

 

서술하는 순서가 좀 바뀌지만 이보다 앞서 나는 일본 감옥의 독감방 속에서 이 궁리 저 궁리가 많았었다.

‘인제 다리가 한 짝 없어졌으니…… 나간대두 군인은 다시 못 할 게구. …… 어떡헌다?’

‘에라, 모르겠다, 문학의 길루나 한번 나가 보자. …… 해서 안 될 일이 있을라구!’

이래서 나는—28살의 젊은 나이였으므로—서울에 있는 누이동생에게, 철창 속에서 신음하는 오빠의 처참한 운명을 염려하여 비탄에 잠겨지는 누이동생에게, 호기스럽게 자신만만하게 편지를 띄웠다.

“사람의 정의는 ‘인력거를 끄는 동물’이 아니다. 다리 한 짝쯤 없어도 문제없다. 걱정 말아!”

_본문 371쪽

 

  우리의 점령당한 ‘노래의 진지’, ‘소설의 진지’에서 다른 세력을 밀어내려면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하고 비분강개만 할 것이 아니라 제가 쓰는 작품에다 ‘맛’을 가미하기에 골몰해야 할 것이다. 우리 작품의 예술성이 그것들을 능가하거나 대등한 수준에 이르기 전에는 아무리 10만 명의 군중대회를 열고 ‘물러가라!’ 하고 외치고 부르짖어도 그것들은 물러가지를 않을 것이다. (……)

  소설가는 당학교의 교원이 아니다. 따라서 소설책도 정치학교의 교과서는 아니다. 물론 설교로 가득찬 성경책은 더군다나 아니다.

_본문 413쪽

 

  지난번에 내가 어느 졸작 소설에서 “저는 이미 마음속에 정한 사람이 있에요”라는 말을 썼더니 편집자는 친절하게도 ‘있에요’를 ‘있어요’로 고쳐 놓았었다. 물론 ‘있에요’와 ‘있어요’는 같은 말이다. 그러나 ‘있에요’에는 아름다운 여자의 ‘맛’이 들어 있다. 이것은 여자뿐만이 아니다. 남자도—젊은 남자가—‘녜, 제가 그랬에요’ 하는 것이 ‘네, 제가 그랬어요’ 하는 것보다 훨씬 ‘감칠맛’이 있는 법이다.

_본문 443쪽에서

 

추천사 

한국판에 부쳐 

저자의 말 

 

소설

 

균열

담뱃국

구두의 역사

괴상한 휴가

우정

고뇌의 표준

네 번째 총각

죄수 의사

문학도

전란 속의 여인들

짓밟힌 정조

이런 여자가 있었다

열병

태항산록

 

산문

 

생각이 나는 대로

형상성과 유머

위덕이 엄마

전적지에 얽힌 사연

한담설화

궁녀

또 뒷걸음질?

간판왕

작가 수업

 

주덕해의 프로필

원쑤와 벗

극단 예술

인육 병풍

나의 양력설

나의 처녀작

강낭떡에 얽힌 사연

불합격 남편

세 악마의 죽음

죄수복에 얽힌 사연

나의 무대 생활

변천의 35년

한 여류작가

맛이 문제

민족의 얼

경사로운 날에 

나의 동범 

발가락이 닮았다

역시 아편 

연극에 얽힌 사연

아름다운 우리말 

 

부록

 

김학철 연보

김학철 작품 연보

미리보기 준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