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정치

세종이 겪은 3대 정쟁

세종, 갈등을 넘어서다 세종의 정치

무선 | 152*225 mm | 332 쪽 | ISBN 979-11-6314-464-9

우리 겨레가 가장 사랑하는 임금 세종은 훌륭한 정치인이었다. 세종은 오로지 백성과 조선을 위해 정치를 했다. 그리고 세종이 펼친 정치는 가난한 조선을 선진 정치와 복지 제도를 갖춘 나라로 발전시켰다. 세종의 정치는 60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보아도 놀라울 만큼 훌륭하다. 2026, 나라 밖에서는 전쟁이 한창이고, 나라 안에서는 갈등과 대립이 계속되고 사람들은 살기 힘들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는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좋은 정치다. 우리가 찾는 좋은 정치에 대한 답이 바로 세종의 정치에 있다. 세종의 정치는 그 시대 백성을 살린 정치, 조선의 미래를 바꾼 정치, 그리고 앞으로 우리와 인류를 살릴 정치다. 평생을 한글 연구에 바친 한글학자이자 세종 전도사를 자처하는 남영신은 세종실록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정치를 발굴해냈다

 

저자 소개

글쓴이 남영신

1967년 서울법대 1학년 때 우연히 국어 운동에 접한 뒤에 법학 공부를 뒤로하고 국어 운동에 뛰어들었다. 국어는 학문의 대상인 관념어가 아니라 민중의 생존 수단인 살아 있는 말이었다. 일본어 투 몰아내기, 쉬운 말 쓰기 운동의 결과물로 1987년에 토박이말 중심 우리말 분류 사전을 출간하였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한글날 공휴일 지정 운동에 참여하였고, 한글 전용, 쉬운 공공언어 쓰기, 문장 바르게 쓰기 운동을 하면서 국가 정책으로 이런 일을 하도록 하는 국어 기본법제정 운동을 벌여 2005년에 이 법이 시행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세종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스스로 세종 전도사를 자처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을 구하는 세종의 정치를 세상에 알리고자 이 책을 썼다. 현재 ()국어문화운동본부의 이사장, 세종국어문화원의 고문을 맡고 있으며, 세종학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말 분류 사전》 《우리말 용례 사전》 《ᄒᆞᆫ + 국어 대사전》 《안 써서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우리말》 《나의 한국어 바로쓰기 노트》 《국어 한무릎 공부》 《기자를 위한 신문 언어 길잡이》 《글쓰기는 주제다》 《보리 국어 바로쓰기 사전》 《시로 국어 공부같은 책들을 썼다.

 

성인

펴낸날 2026-05-15 | | 글 남영신 |

2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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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시대 격렬했던 정쟁

세종, 갈등을 넘어서다세종이 겪은 3대 정쟁

세종이 조선을 다스리던 32년 동안 조정에서는 날마다 치열한 정쟁이 벌어졌다. 신하들은 임금이 하는 일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 찾아가 토론을 벌였다. 세종은 언제나 신하들이 하는 말을 들어 주었고, 자기를 비판하는 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나랏일을 했다.

우리는 세종 시대에 조선의 문물이 최고도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보고 이 업적이 세종과 신하들이 마음을 같이해 일사분란하게 만들어 낸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치열한 정쟁 속에서 기력을 잃고 마음고생을 하면서 이룩한 것이다. 세종은 권력을 독점하기보다 분산하는 것을 바라고 신하들과 함께 국정을 운영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하들의 반대 의견을 존중하고 들어 주었다.

세종은 힘을 내세워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지 않고, 임금에게 누구나 어떤 말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언로를 활짝 열어 두어야 나라가 튼튼하게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세종 시대에는 누구나 임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고, 어떤 의견이든 낼 수 있었다. 격렬한 정쟁 속에서 견디고 포용하는 정치인 세종을 만난다.

 

양녕대군 정쟁, 불교 정쟁, 섭정 정쟁

세종이 즉위한 뒤 가장 먼저 벌어진 정쟁은 양녕대군에 관한 것이었다. 세종은 세자에서 폐위되어 경기도 이천에 있는 형 양녕대군을 다시 종친 어른으로 대접하고 자유롭게 살게 하고 싶었다. 신하들은 양녕대군을 나라의 죄인으로 보고 세종의 조치에 반대했다. 양녕대군은 번번이 법을 어기고 물의를 일으키며 정쟁에 불을 지폈다. 형을 위하는 세종의 마음과 혹시 모를 불씨를 제거하려는 신하들이 팽팽하게 맞섰다.

두 번째로 일어난 정쟁은 불교과 관련된 것이었다. 조선은 숭유억불 정책을 폈고 신하들은 불교를 철저히 배척하려 했지만, 세종은 불교를 뿌리 뽑아야 할 종교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흥천사 사리각 보수 공사에서 시작해 경찬회 개최, 내불당 건축까지 격렬한 정쟁이 벌어졌다.

세 번째로 일어난 섭정 정쟁은 세종의 건강과 사명감에서 비롯되었다. 세종은 건강 문제로 세자에게 섭정을 맡기겠다고 선언했고, 신하들은 권력이 두 군데로 나뉘면 안 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세종은 세자 섭정을 끝까지 밀어붙여 세자에게 정무를 맡기고 자기는 중요한 일, 훈민정음 창제와 보급에 전념할 수 있었다. 세종이 부드러운 통솔력으로 정쟁을 이겨내고 마침내 뜻을 이룬 과정들을 살펴본다.

 

세종의 펼친 포용의 정치

세종이 겪은 세 정쟁은 설득과 동의를 통해 부드러운 정의를 이루는 과정이었다. 세종은 반대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속에서 쓸 만한 생각들을 찾아 냈다. 세종은 신하들이 내놓은 의견을 듣고 항상 네 말이 옳다고 하고 존중했다. 때로는 임금을 모욕하는 말이 들리더라도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것은 신하들이 임금을 마음껏 비판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세종이 생각하는 정치는 백성을 구하는 일이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신하들이 자신들의 임무를 잘 수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세종은 비판하는 목소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정쟁을 겪으면서 신하들의 비판을 달게 받았다. 세종은 사헌부, 사간원, 집현전 관리들에게 임금을 비판할 수 있는 언로를 무한정 열어 두고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포용의 정치를 펼쳤다. 포용의 정치를 통해서 조선이 튼튼해질 것이며 백성들을 구하는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세종의 정치

2026년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 나라 밖에서는 전쟁이 한창이고, 나라 안에서는 갈등과 대립이 계속되고 사람들은 살기 힘들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는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좋은 정치다. 기술과 자본, 자원까지 넘치게 가지고 있더라도 좋은 정치를 이루지 못하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삶을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정치가 필요한가? 600년 전 세종의 정치에 답이 있다. 세종이 펼친 정치에서 배워야 한다. 세종의 정치는 그 시대 백성을 살린 정치, 조선의 미래를 바꾼 정치, 그리고 앞으로 우리와 인류를 살릴 정치다.

우리 겨레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임금, 세종은 조선을 32년 동안 다스렸다. 32년이 조선의 미래를 바꾸었다. 세종에게 정치는 백성들을 잘 살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평생 동안 오로지 정치에만 몰두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물시계, 해시계를 만들며, 의학서적을 펴내고, 사군과 육진을 개척하며, 음악과 천문학을 정비하고, 선진 정치와 높은 수준의 복지제도를 마련한 모든 일들은 조선의 백성들을 잘 살게 하려는 세종의 정치였다.

 

우리가 몰랐던 정치인 세종

세종은 조선 제4대 임금으로 많은 부문에서 조선의 문물을 당대 최고로 발전시킨 위대한 군주다. 우리는 세종이 타고난 천재이자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세종이 이룬 업적들에 감탄하면서도 세종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일들을 해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정치인 세종, 인간 세종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세종은 정의롭고 따뜻하며 포용하는 지도자였다. 세종은 백성이 억울하게 죽는 일을 막기 위해 범죄사건을 직접 챙기기도 했으며, 관리들의 잘못으로 백성이 죽게 되면 엄히 다스리기도 했다. 평범한 백성이 형조의 수사에 항의하며 고소하자 막강한 권력자인 형조 판서와 대사헌을 구속하기도 했다. 세종은 어떤 안건이든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항상 신하들의 의견을 묻고 경청했으며, 의견이 다를 때에는 끝까지 토론을 했다. 조세 제도인 공법(貢法)을 제정할 때는 전, 현직 관료들과 지방 수령들을 비롯해 직접 농사를 짓는 농부들까지 전국 17만 명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여론조사를 하기도 했다.

세종의 정치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평생을 한글 연구에 바친 한글학자이자 세종 전도사를 자처하는 남영신은 세종실록에서 세종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을 생생하게 불러왔다. 덕분에 우리는 밤잠을 잊고 고민하며 노심초사하는 세종, 비판하는 목소리들을 경청하고 반대하는 이들을 끊임없이 설득하는 세종, 때로는 실망하고 한탄하며 역정도 내는 인간 세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판결, 정쟁, 정책을 통해 보는 세종의 정치

세종의 정치시리즈는 세종, 정의를 세우다-세종이 내린 판결 20》 《세종, 갈등을 넘어서다-세종이 겪은 3대 정쟁》 《세종, 백성을 살리다-세종이 추진한

들어가는 말_세종 시대 세 가지 정쟁

 

1부 양녕대군 정쟁

1. 양녕대군 정쟁의 불씨

2. 양녕대군을 빈전에서 쫓아내다

3. 양녕대군을 청주로 쫓아내다

4. 양녕대군을 다시 이천으로 옮기다

5. 양녕대군, 간통을 저지르다

6. 사헌부 관리가 양녕대군을 신문하다

7. 양녕대군, 복권되어 서울에서 살게 되다

 

2부 불교 정쟁

1. 불교 정쟁의 발단, 흥천사 사리각 재건축

2. 성리학을 앞세운 특권 세력의 등장

3. 불교 정쟁의 심화, 흥천사 경찬회

4. 불교 정쟁의 폭발, 내불당 건축

 

3부 섭정 정쟁

1. 의정부 서사제에서 세자 섭정으로

2. 첨사원 설치 정쟁

3. 세자 남면 정쟁

 

맺음말_세종이 추구한 부드러운 정의

미리보기 준비 중입니다.